[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가와사키병’의 새로운 원인 드러나
1840년대 말 영국 런던은 콜레라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 영국 땅에 처음으로 콜레라가 전해진 18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 콜레라에 걸린 환자들은 구토와 격렬한 설사 등으로 인해 하룻밤 새 체중의 10퍼센트가 빠지게 된다. 그러다 결국 피부가 시퍼렇게 변하면서 며칠 만에 죽음을 맞는다.
환자 자신이 또렷한 정신으로 죽음으로 치닫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으니 끔찍했다. 게다가 질병의 원인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 공포감은 더 심했다. 당시 콜레라의 원인을 놓고 감염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독기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감염설이란 마치 감기처럼 콜레라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모종의 매개체를 통해 옮겨진다는 이론이었다. 그에 비해 독기설은 콜레라가 개인적 접촉이 아니라 오염된 대기 속의 독기를 통해 퍼지는 질병이라고 믿는 이론이었다. 실제로 런던의 템즈강과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는 실제로 악취가 넘쳐나던 곳이었다.
‘백의의 천사’로 유명한 나이팅게일과 에드윈 채드윅 등 당시의 쟁쟁했던 의료계 인사 및 과학자들의 대부분이 독기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콜레라가 전염병이라고 생각하던 응답자는 5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오염된 물을 통해 질병이 전달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다고 생각한 감염론자들조차 콜레라가 수인성 전염병일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았다.
콜레라가 당대의 의학 수수께끼였던 것처럼 현대 의학에서도 아직 그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불가사의한 질병이 존재하고 있다. 1967년 일본의 적십자중앙병원 소아부장이던 도미사코 가와사키 박사가 최초로 규명한 ‘가와사키병’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감기로 오인되는 ‘가와사키병’
생후 6개월에서 5세까지의 어린이들에게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이 병의 주요 증상으로는 5일 이상의 고열, 피부의 부정형 발진, 양측 결막 충혈, 입술의 홍조 및 균열, 딸기 모양의 혀, 구강 발적, 경부 임파선 비대, BCG 접종 부위의 발적 등이 급성기에 나타난다. 또 열이 떨어진 후 손발의 피부가 벗겨지기도 한다.
초기 증상이 독감과 매우 비슷해 흔히 감기로 오인되기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이 질환을 진단받는 아이들은 대부분 처음에 해열제를 먹다가 다른 증상이 동반된 이후 가와사키병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가와사키병의 급성기 염증 반응은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평균 12일가량 경과되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관상동맥이 주머니 모양으로 늘어나거나 울퉁불퉁해지는 관상동맥 동맥류의 발병 등 심장 합병증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 및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보통 가와사키병 환자 1만명 중 3~5명은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지난 50년간의 연구에도 이 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는 유전학적 요인이 있는 소아가 병원체에 감염되면 과민반응이나 비정상적인 면역학적 반응을 일으켜 가와사키병이 발생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예방법도 없다.
그런데 최근 중국 북동부의 광활한 경작지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부유성 독소가 가와사키병의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2011년에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의과대학의 제인 번스 교수가 이끄는 다국적 연구팀은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을 거쳐 태평양 너머까지 흐르는 대류권의 기류가 이 병의 원인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연구팀은 대기학 및 해양학적 측정치를 조사한 결과, 국지적인 북서풍이 강하게 불었던 1979년과 1982년, 1986년에 일본에서 가와사키병이 대규모로 유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북태평양 건너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1994년~2008년 발병률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와 유사한 연관성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가와사키병은 주로 일본, 한국, 미국 등 환태평양지대 국가에서 발병률이 높다. 처음 발견된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발병률이 높으며, 두 번째로 높은 빈도를 나타내고 있는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천명 이상의 어린이가 가와사키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근 들어 국내 발생빈도가 차츰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바람 도착하는 날에 어린이들이 병에 걸려
그때 이 다국적 연구팀에 참여했던 스페인 카탈로니아 기후과학연구소의 사비 로도 박사팀이 심층분석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추가증거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2014년 5월 19일자에 기고했다.
그에 의하면 연구진은 일본의 47개 지방에서 제출받은 지난 40년간의 보건기록을 분석해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 날짜를 뽑은 다음 컴퓨터 기류모형을 이용해 바람의 방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어린이들이 가와사키병에 걸렸던 날짜와 중국 북동부에서 바람이 불어왔던 날짜가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중국에서 부는 바람은 2일 만에 일본에 도착했는데, 그로부터 0.5일 후 어린이들이 이 질병에 걸린 것으로 밝혀진 것. 또한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마자 가와사키병의 위세도 수그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연구진은 중국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와 가와사키병을 일으키는 부유성 독소의 정체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중국 북동부가 주로 옥수수나 쌀, 밀을 재배하는 광활한 경작지이므로 작물에 기생하는 진균류에서 생성되는 독소가 주범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진은 앞으로 수차례의 추가 비행을 계획하고 있으며 미국의 발병 사례에 대해서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에 대한 과학계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기류의 역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공기를 포집하는 기법은 환경과학에서 잘 정립된 방법이라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과학자들은 인간의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에이즈도 처음엔 미지의 독소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엔 감염성 병원체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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