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기술인] 최석정 (상) /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7)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지난 2013년 10월 조선시대의 문신이었던 최석정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자로 선정했다. 조합수학의 창시자인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를 앞지른 조선시대 천재 수학자라는 게 선정 이유였다.
사실 최석정은 병자호란 때 주화론(主和論)을 이끈 최명길의 손자이자, 여덟 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정치가로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최석정의 생부는 최후량이고 최후량의 생부는 최혜길로서 최명길의 동생이었다. 그런데 최후량은 최명길의 양자로 들어갔고, 최석정은 최명길의 아들인 최후상의 양자로 들어감으로써 최명길과 조손 사이가 되었다.
이처럼 명망 있는 집안에서 성장한 최석정은 9세 때 ‘시경’과 ‘서경’을 암송했으며 12세 때는 ‘주역’을 도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신동으로 불리었다. 17세 때 감시(監試)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며 20세 때는 진사시에 장원급제하고 동시에 생원시에도 합격했다. 24세 때인 1671년 정시문과에 급제해 승문원에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한림회천(翰林會薦)에 뽑혀 사관으로서 활동하다가 홍문록에 올라 홍문관원이 되었으며, 응제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호피(虎皮)를 하사받기도 했다. 이후 이조참판,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등을 두루 거치다가 1697년(숙종 23년) 우의정에 올랐다.
당시 청나라는 ‘대명회전’을 근거로 조선의 세자 책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는데, 우의정에 오른 최석정이 법 적용의 해석을 새롭게 제시함에 따라 세자 책봉을 실현시켰다. 2년 후 좌의정이 된 최석정은 대제학을 겸임했으며, 1701년에는 영의정에 임명됐다. 하지만 그는 임명되자마자 장희빈의 처형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 고향인 진천으로 낙향했다.
그러나 다음 해 판중추부사를 거쳐 다시 영의정이 되는 등 1710년까지 총 8번에 걸쳐 영의정을 역임하면서 숙종대 정국의 중심에서 활약했다. 그가 영의정에 8번이나 임명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수차례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조부인 최명길에 대한 비난과 더불어 그의 뛰어난 재능에 대한 시기와 견제 등이 작용했기 때문인데, 그는 의리와 명분론에 집착하지 않고 가능한 한 당쟁의 화를 줄이는 처신을 보여 또다시 등용되곤 했다.
특히 그는 백성의 어려움 등 현실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어 수학과 과학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의리나 명분에 휘둘려 당쟁에 뛰어들기보다는 수학 및 과학적 사고체계로 합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학문의 범위가 매우 넓었던 학자
이런 성향은 그의 정치적 노선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최석정은 줄곧 소론의 길을 걸었는데, 원래 소론과 노론은 서로 뿌리가 같은 서인 계열이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그 책임을 둘러싸고 사상적인 대립을 벌이던 중 갑술환국으로 실각한 남인들의 문책 수위를 둘러싸고 서인 강경파는 노론, 온건파는 소론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때문에 교조적인 노론계와 달리 소론이었던 최석정은 수학이나 과학 같은 비성리학적인 분야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의 학문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학문의 범위가 매우 넓었다는 것인데, 숙종실록에 의하면 그는 산수와 자학(字學)에서도 매우 뛰어났다고 기술되어 있다.
박율이 수학책인 ‘산학원본’을 발행할 때 독려하며 서문을 써주기도 했으며, 독일 수학자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가 1583년에 저술한 ‘실용산술개론’을 중심으로 번역해 서양수학을 중국에 처음 전파한 ‘동문산지(同文算指)’를 조선에 소개한 이도 바로 최석정이었다. 이밖에도 그는 남송시대의 ‘양휘산법’과 원나라의 ‘산학계몽’은 물론 스코틀랜드의 수학자였던 존 네이피어의 ‘주산(籌算)’을 인용하는 등 자신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이론을 섭렵하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망실된 조선의 수학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그는 중국에서 서양학문과 천주교 교리를 망라한 ‘천학초함(天學初函)’을 들여와 연구하면서 시헌력과 관련된 천문학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1687년에는 이민철이 만든 ‘선기옥형(일종의 천문시계)’에 대한 수리를 건의했으며, ‘우주도설’ 등의 저서에서는 서양학문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최석정은 성력(星曆)을 잘 해독하여 관상감 교수를 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가 남긴 저서 중에는 한글을 연구한 ‘경세정운도설’도 있다. 이 저서는 한글을 음운학적으로 연구한 것으로, 개화기의 국어학자였던 주시경 선생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예학에도 해박하여 ‘예기유편’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그의 폭넓은 학문 범위가 때론 정적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최석정의 복어독 중독 사건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최석정의 복어독 중독사건이다. 1709년 2월 21일자의 숙종실록을 보면 “최석정이 복어를 먹고 거의 죽을 뻔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실록에까지 기록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영의정이던 최석정은 자신이 편찬했던 ‘예기유편’으로 인해 노론 세력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었다. 예기유편은 궁중 의례 문제로 예송논쟁을 겪은 이후 이를 정리해둘 필요성을 느낀 최석정이 ‘예기’의 원문 중 뒤섞인 것을 바로 잡고 빠진 것을 보충해 다시 세밀하게 정리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편집 방식은 주자의 ‘의례통해’를 모방하기는 했으나, 주자와는 조금 달리 그의 독자적인 견해에 따라 내용이 분류되어 있었던 것. 이에 대해 노론 측에서는 이의를 제기하며 판각을 부수고 책을 불태울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숙종이 최석정을 감싸고돌자 노론계 유생들이 통문을 돌리는 등 사태가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하필 최석정이 복어를 먹고 거의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역시 소론계이자 최석정의 스승이었던 남구만은 “저술할 만한 글이 한 가지만이 아닌데 하필이면 예기유편이고, 먹을 만한 물건이 매우 많은데 하필이면 복어인가”라며 노론 측에 의해 궁지에 몰린 최석정을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그는 책을 편찬할 때 자신의 시각으로 저술하는 특징이 있었는데, 서양수학이나 과학도 동양이론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당대의 수학적 성과를 정리하고 연구한 것으로 유명한 그의 저서 ‘구수략(九數略)’도 기초적인 수학에서 중요한 내용을 모두 추리고 거기에 역학 이론을 합해 동양철학에 입각하여 수학적 이론을 세운 것이 특징이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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