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첨단과학의 경연장이 된 월드컵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빅데이터가 ‘펠레의 저주’를 깰 수 있을까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경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38선의 여러 지역에서 일제히 요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6.25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북한군의 포성이었다.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는 전 세계 축구 제전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시차가 12시간이니 현지 시간으로는 6월 24일 오후 4시였다.

당시 ‘제4회 브라질 월드컵’의 최대 화제는 영국의 첫 출전이었다. 축구 종주국을 자부하던 영국은 그때만 해도 FIFA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월드컵 개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오만한 자존심을 꺾고 월드컵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왜냐하면 그 대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2년 만에 처음 열리는 월드컵이어서 전 세계인과 함께 전쟁의 쓰라린 상흔을 축구를 통해 씻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전쟁 도발국이었던 독일의 경우 그 대회에 초청받지 못했다. 전쟁의 후유증이 너무 컸기 때문인지 본선에 진출한 16개국 중 3개국이 다양한 이유를 대며 참가하지 않았다. 이처럼 평화를 기원한 축구 제전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시각 한반도에서는 동서 냉전을 더 격화시키는 전쟁이 발발했던 것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의 공식 로고 ⓒ FIFA

2014 브라질 월드컵의 공식 로고 ⓒ FIFA

그로부터 64년이 흐른 지난 13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코린치앙스 스타디움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의 개막식이 화려하게 열렸다. 1950년에 열린 브라질 월드컵의 화두가 전쟁이었다면, 이번 대회의 경우 첨단과학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25분에 걸친 이번 개막식 공연 도중 64명의 어린이들이 나와 곡예사가 몸으로 만든 공 40개와 뛰어노는 퍼포먼스를 진행됐는데, 그중에는 몸에 걸쳐서 입는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한 장애인이 등장했다. 또 브라질과 크로아티아 간의 개막 경기 직전에는 하반신이 마비된 20대 청년이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그 청년은 두 사람이 받쳐주는 철봉 지지대를 잡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개막전의 시작을 알리는 시축을 선보였다. 그 청년 역시 웨어러블 로봇 덕분에 휠체어에서 일어나 시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브라질 출신의 뇌신경과학자인 미국 듀크대 미겔 니콜레리스 교수가 개발한 이 재활로봇은 환자가 다리를 움직이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뇌파로써 로봇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니콜레리스 교수의 30년에 걸친 연구와 전 세계 과학자 125명이 참여해 이루어졌다.

첨단 골 판정 시스템 처음으로 도입돼

EEG라는 헬멧에 장착된 32개의 전극이 다리를 움직이려는 뇌파를 감지해 배낭 속의 컴퓨터로 신호를 보내면, 배터리와 유압펌프가 로봇 다리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또 로봇 다리 발바닥에 부착된 센서는 지면과 축구공이 닿는 것을 감지해 환자에게 실제로 땅을 밟고 공을 차는 느낌을 진동으로 전달해준다.

이 로봇 개발에 참여한 독일의 한 연구원은 이번 시축 행사에 대해 “과학이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며, 장애를 극복하려는 환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월드컵은 첨단 골 판정 시스템이 처음으로 도입되는 대회이기도 하다. 대회가 치러지는 브라질의 12개 경기장마다 골대 하나당 7대씩의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데, 이 카메라는 초당 500장의 영상을 찍어 축구공이 골라인 안으로 들어갔는지의 여부를 100퍼센트 정확히 판단해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즉시 심판이 차고 있는 시계에 진동과 함께 메시지로서 전송돼 심판의 판단을 돕는다.

FIFA는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페루 청소년 월드컵에서 시범 운용하는 등 준비를 했으나 결국 도입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 시스템의 정확도가 95퍼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오심 시비는 계속 이어졌으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오심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라이벌로 알려진 독일과 영국의 16강전에서 영국의 프랭크 램파드 선수가 찬 공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안쪽으로 떨어졌음에도 주심이 골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FIFA는 전자식 골인 판독 시스템의 도입을 다시 고려했으며, 이번 월드컵 본선에서 처음으로 독일 ‘골컨트롤’ 사가 개발한 첨단 골 판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편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는 이번 월드컵 대회의 우승 후보로 독일과 스페인을 찍었다. 그러자 현지에서는 브라질을 꼽지 않은 것을 두고 역시 펠레는 애국자란 말이 나돌았다. 왜냐하면 역대 월드컵 경기에서 펠레가 우승후보로 점치는 국가마다 조기 탈락하는 ‘펠레의 저주’ 때문이다.

독일 축구대표팀, 빅데이터 분석기법 도입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펠레는 아르헨티나의 결승 진출을 예상했으나 8강에서 탈락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콜롬비아를 우승 후보로 꼽았지만 자책골과 함께 예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냈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프랑스가 펠레의 저주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우승 후보로 꼽았던 나이지리아가 조별리그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탈락한 바 있다.

그런데 순전히 과학기술적 측면에서만 봤을 때 이번 대회에서 독일은 ‘펠레의 저주’를 최초로 깨뜨릴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독일 축구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빅테이터 분석 기법’이란 첨단 비밀 무기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이 기법은 선수들의 무릎과 어깨 등에 부착한 센서에서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한 다음 선수별 장단점을 파악해 경기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미드필드에서의 움직임이 더 좋은지, 앞뒤로의 움직임이 활발한지 아니면 좌우로의 움직임이 활발한지, 특정 지점에서 왼발 슛이 더 좋은지 아니면 오른발 슛이 나은지까지 분석할 수 있다.

따라서 감독과 코치진은 상대팀의 특성에 따라 어떤 선수가 적합한지를 데이터 분석을 통해 판단함으로써 경기 때마다 최상의 주전 라인업을 짤 수 있다. 또 주전 중 한 선수가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할 경우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장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로 대체할 수 있다. 이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은 비즈니스 소프프웨어 분야 세계 1위 업체인 독일의 ‘SAP’ 사가 월드컵을 대비해 독일 국가대표팀만을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최대 관심사는 1950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아쉽게도 준우승에 머문 브라질이 이번엔 과연 우승컵을 차지할지에 쏠리고 있다. 더불어 대회 곳곳에 숨어 있는 첨단 과학기술이 각 팀의 승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켜보는 일도 좋은 흥밋거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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